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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4437
      2008-01-18
얼마 전 초등학교 여학생이 친구들의 집단 따돌림, 소위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친구들 사이의 따돌림을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얼마나 고민과 어려움이 깊었으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하는 마음에 안타까운 심정뿐이다. 물론 이번 사건은 극단적인 종말로 치달았지만 집단 따돌림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심각하게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진료 현장에서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왕따’는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 모두에게 너무나도 사소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인 정인이의 경우도 사소한 친구의 농담 한마디가 정인이를 왕따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도 여느 다른 날과 같이 학교에서 정인이는 친구들과 그 전날 보았던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친구 중 하나가 어제 TV에 나와서 얼굴이 크다고 놀림감이 되었던 연예인과 정인이의 모습이 닮았다고 하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정인이도 그때까지는 별일이 아니게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후로
정인이의 별명은 얼굴이 크다는 의미의 ‘얼큰이’ ‘모여라 꿈동산’등으로 불리게 되었고 아이들의 따돌림은 시작됐다. 정인이 주변의 친한 아이들조차 정인이와 친하게 지낼 경우 자신도 왕따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인이를 모른척하기 시작했고, 정인이는 친구가 없는 아이로 변해갔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 시작해 정인이는 단지 놀림감이 아닌 폭력과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인이는 서서히 얼굴에 웃음을 잃은 아이가 되어갔고, 매일 아침 학교를 갈 시간이 되면 두통이나 복통 등의 신체증상을 호소하며, 사소한 일을 갖고도 집에서 짜증을 부리며 어린 동생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문제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소아과 등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신경성이라는 말밖에는 딱히 병명을 알 수가 없어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다니다 결국은 이곳까지 왔다는 얘기였다. 진료를 해나가면서 정인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알게 된 것은 정인이의 소원 중 하나가 얼굴이 작아지는 것이라는 대답으로부터 였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정인이는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얘기하게 되었다. 심리검사상 아이는 우울증과 함께 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고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며 친구들에 대한 복수심까지 표현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4학년 아이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 부모면담을 통해 정인이의 어려움과 치료에 대한 상의를 하고 학교의 도움을 구했다. 사실 왕따 같은 문제는 아이들 사이에 은밀히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선생님도 모르게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덮어두기 보다는 학교의 적극적인 도움을 통해 가해학생이나 동조하는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지도하는 것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인이의 경우도 일단 학교에서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후부터는 상황이 금방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별 생각 없는 놀림이 친구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피해학생의 대부분이 우울이나 대인기피, 학교 거부 등의 심각한 정신적인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심리적인 치료의 병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인이의 경우도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 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친구들에 대한 분노와 공격성 우울한 기분 등이 상황이 바뀌었음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이다. 치료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놀이치료와 함께 가정에서의 행동수정을 위한 부모교육이 병행되어 실시되었다. 아이는 주1회의 놀이치료를 통해 그 동안의 어려움을 표현했고, 친구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대인관계훈련을 병행하였다. 집에서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짜증이나 신경질대신 대화를 통해 자신의 요구사항을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지금 정인이는 왕따의 피해자도 아니고 학교를 거부하지도 않는 밝은 아이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에 대한 기억은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왕따,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은 예방이 최선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닐 경우 이런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가 많은데, 일단 아이들 사이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비단 피해학생이 아닌 가해학생도 문제가 심각할 경우 학교에서의 처벌이나 사법적인 처벌로 인해 심각한 정서적 후유증이나 상처가 남기 때문이다. 가정에서의 교우 관계에 대한 교육과 학교의 적극적인 교육과 관찰을 통해 미연에 이러한 사항을 예방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소아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정인이가 생기지 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최소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